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일도 많지만, 뻔히 알면서 못하는 일들도 많다.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는 것, 인생 최고의 가치인 줄 어찌 모르랴.
순간마다 재깍대는 시계의 초침소리는 잠시도 멈춤이 없다. 세월이 빠르다는 것은 가끔씩 깨달으면서도 초침소리가 쌓여 시간이 되고, 세월이 되는 것은 별로 관심이 없다. 시계의 초침소리는 인생 삶의 소리다. 순간도 쉼 없이 들리는 시계의 초침소리는 곧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우리들의 발자국 소리다.
겨울밤 하염없이 삼경을 지키고 앉아있으면 삶의 화두 한 가닥이 떠오른다. 살아온 세월, 그리고 살아갈 세월을 헤아려 본다. 서가(書架)에 올려놓은 탁상시계 초침소리가 오늘따라 예리하게 뇌리를 누벼댄다. 하기야 오면 가고, 가면 다시 오고, 인생은 윤회가 아니던가.
생명은 누구나 단 하나뿐이고, 삶은 누구나 단 한번뿐이다. 부귀영화 아무리 누렸어도 생명 두 개 가진 사람 없고, 삶이 두 번이었던 사람도 없다. 사람은 모두 일명(一命) 일생(一生)뿐이다. 석가도, 예수도 죽었다. 사는 동안 얼마나 깨닫고 가치 있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시작은 반드시 끝을 동반한다. 존재는 곧 부재가 된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약속한다. 그것도 신과의 약속이다. 신은 하나 주면 반드시 하나는 빼앗아간다고 했다. 어떤 생명도, 어떤 무생물도 시종(始終)이 반복되기는 마찬가지다.
석가(釋迦)는 그 이치를 윤회(輪回)사상으로 설파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기에 융ㄴ회사상은 세상의 등불로 꺼지지 않고 있다. 모두가 유한(有限)하기에 각자마다 존재하는 동안의 가치가 소중하다. 존재의 가치 중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깨달음이다. 깨달음만이 지혜를 생산하고 보람을 생산한다.
우리는 세월 속에 살면서도 세월을 모르고 산다. 배부를 때는 밥의 가치를 모르는 것과 같다. 시계의 초침소리가 죽음으로 가는 발자국소리인 것조차도 모르고 산다. 그러면서도 시간과 세월에 대해서 모르는 것 없는 것처럼 떠들어 댄다.
세월은 순간도 재활용을 허락지 않는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 까지 항상 새로운 시간만 체험하고 산다. 미래의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삶의 순간은 항상 처음이고, 새롭고 낯설다. 지난 시간을 거울삼아 항상 깨달음도 새로워야 한다. 누구나 미래에 대한 희망은 있어도, 미래를 살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래는 언제나 기다림만으로 그리는 새 세상이다. 때문에 오늘의 깨달음은 내일을 사는 지혜가 된다. 삶이란 누구나 내일을 향한 연습 없는 도전이다. 희로애락과 영고성쇠를 반복하면서 세월가고, 늙어지고, 또 없어지고 태어나기를 거듭하는 윤회만이 정답이다. 삶의 길은 오직 깨달음이다. 죽는 날까지 깨달음 하나 찾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깨달음은 곧 인간답게 살다가는 지름길이다. 너나없이 공부하고, 배우는 목적도 깨달음 하나 얻기 위한 경쟁이다. 의지할 곳은 진리(眞理)밖에 없다. 연습 없이 사는 막연한 인생의 등불은 진리뿐이다. 진리는 삶의 증언이고 역사다.
불가에선 법등명(法燈明)이다. 깨닫는 사람만이 진리를 알고 세상의 등불이 된다. 실체는 죽었어도 영혼으로 살아있는 석가도 예수도 자비와 사랑으로 깨달은 진리 때문이다. 책 읽는 것도 모두 깨달음 하나 찾기 위함이다. 중국 송(宋)나라 태종은 開卷有益(개권유익)의 철학으로 제도(濟度)의 진리를 세웠다. 보람되게 살고자 노력하는 인생은 과정만으로도 아름답다. 開卷有益(개권유익)은 책을 읽고 공부하라는 가르침이다. 책은 펼쳐드는 것만으로도 유익하다는 진리다. 책 잉ㄺ고 공부해서 손해보는 사람은 없다. 시계의 초침은 순간도 멈춤 없이 재까가대며 어디를 향해 그리도 열심히 달리는가. 진리일까, 영원일까. 아니면... 언제라도 開卷有益(개권유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