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說
유비무환有備無患.
11월 산천이 붉게 물들어가는 晩秋가 왔다.
자연은 우리에게 변함없는 節氣와 아름다움을 주고있다.
아침,저녁 기온은 제법 쌀쌀하여 두꺼운 옷을 입어야 제맛이다.
노년 인구가 많아진 시대에 독감 백신의 부작용의 후유증이 많이 발생하여 백신접종에 불안함을 야기시키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사라질 줄을 모르고 우리의 생활양식을 바꾸고 있다.
글자 그대로 우리는 준비하는 습관,정신,태도,행동을 이제 생활화 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국민 개개인의 건강부터 시작하여 지방자치 나라 전체의 의료보건 체계를 수시 점검하여야 할 것이다.
장자의 철학우화 <털끝에 놓인 태산을 어이할까. 윤재근著>는 말한다.
「올빼미나 수리는 말한다.한밤에 벼룩을 잡고 털끝까지 헤아려 보지만 한낮에 나오면 눈을 부릅떠도 언덕을 보지 못한다.
올빼미의 눈이 밤에는 좋고 낮에는 나쁘다고 말할 것은 없다.
낮이면 못본다고 올빼미가 제 눈을 제 발톱으로 후벼내지 않는 것은 밤이면 보아야 하는 것이고,낮이면 나무가지에 앉아서 쉬면 되는 까닭이다.
소와 말에게 네 개의 발이 있는 것,이것이 하늘이다. 말 머리에 고삐를 매고 소의 코를 뚫어 구멍을 내는 것,이것이 사람이다.
자연은 무었인가? 소의 네 발이다.문화는 무었인가? 소의 코를 뚫어버린 구멍이다.
소의 네 발을 누가 주었는지 말로는 밝힐 수 없다.
그러나 소의 코에 구멍을 누가 뚫었는지는 분명하다.
무엇이 소의 코에 구멍을 냈는가? 사람이다.
소의 네 발은 소를 편하게 한다.소의 코에 뚫린 구멍은 소를 불편하게 하고 고통을 받게 한다.
사람은 손발로 일을 해서 먹고 살았다.그러자 도구를 쓰기 시작했다.
아마도 소의 코를 뚫어서 구멍을 내고 그 구멍에 코뚜레를 끼워서,일을 시킬 수 있다는 꾀를 알았을 때 일은 벌어진게다.
문화가 인간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 인간만이 행복하게 한다는 집착을 갖게 하는 까닭이다.
그러한 집착은 드디어 자연은 물질이라는 결단을 내리고 만물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있는 중이다.
그러한 믿음은 양계장에 가보면 확연해진다.
됫박만한 통 속에 암닭을 넣어 놓고 앞에다 모이통을 달고 밝은 전등을 켜 놓고 음악을 틀어 놓는다.
낮에만 알을 놓는 닭의 본성을 이용하려고 전등을 켜서 닭의 밤잠을 훔친다.
음악을 들려주면 알을 잘 낳는다고 하여 틀어놓은 음악은 닭의 몸을 훔치는 것이다.
그리고 알을 팔아서 돈을 벌다가 닭이 늙어지면 됫통에서 꺼내 쥐덫 같은 철망에 실어 육계감으로 팔아 버린다.
이처럼 사람은 닭의 본성을 훔치고 닭의 몸을 훔치고 닭의 알을 훔친다.
그렇다고 양계장 주인을 도둑이라 말할 수 없고 잔인하다고 비방을 받으면 안된다고 여긴다.
문화는 결국 천지를 양계장처럼 만들어야 끝이 날 모양이다.」
위 글에서 우리는 자연과 무위, 사람과 인위에 대하여 깊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문화의 발전이 꼭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莊子의 철학을 읽다보면 느낄 수 있다.
어쩜 조금은 어눌하게 살자.
어쩜 조금은 사랑하며 살자.
어쩜 조금은 손해보며 살자.
어쩜 조금은 사오정이 되자.
어쩜 조금은 쉬어가면 살자.
어쩌면 조금은 어눌함 속에서 우리의 행복이 영위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