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 두견새 울음소리 자지라들고, 어스름달빛에 산골 논 개구리들 잠 못 드는 늦은 봄밤, 5월의 훈풍타고 밀려드는 마당가 오동 꽃향기를 맡아 본 향촌(鄕村)의 추억을 아는가. 능선타고 넘어오는 6월의 밤꽃향기 그윽한 산골 집 뒤뜰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모란꽃 너그러운 자태를 글로 그려 본 적이 있는가. 향기 나는 사람, 향기 나는 사랑, 향기 나는 글...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감성의 초점은 향기다. 때문에 향기를 제쳐놓은 인간의 이상은 없다. 글 쓰는 사람들일수록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이다. 천리, 만리 향기 나는 문장 하나 찾기 위해 문학도들의 노력은 치열하다. 물리적으로 따진다면 생명도 없는 글 속에 무슨 향기가 있나. 그러나 정서적으로 따지고 보면 글에 비교될 생명도 없고, 향기도 없다. 한구절의 글 앞에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군자 향으로 비유되는 난초향 인들 어찌 문향(文香)을 따르겠는가. 문향은 시공을 초월한다. 만리도 가지만, 만년도 간다. 멀리 갈수록, 오래 갈수록 더욱 아름다워지는 게 문향이다. 사색에 의한 높고 깊은 향기이며, 피와 살을 태우는 번뇌의 향기이기에 풍길수록 더욱 고상해 지고 황홀해지는 끝없는 향기다. 미쳐야 피워내는 향기, 내적인 영향력이나 작용력을 모두 바쳐야 피워 내는 향기다. 글의 향기는 깨달음과 참선의 경지에 다다르는 거창한 설명이 필요 없다. 사회정서를 바꾼다는 공익성도 따질 필요가 없다. 자아(自我)가 거부당한 사회에 살지라도, 진실한 삶으로 나가고 싶다는 고백만 담기든가, 아니면 고해로서 평정을 얻고 싶다는 진실만 표현 되면 글의 향기는 독자들의 심금에서 은연중에 풍기게 된다. 가장 인간적인 체온을 느끼게 하는 글..., 가장 인간적인 마음을 깨닫게 하는 글..., 상상은 경험과 관계없다고 쓰든,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상상 할 수도 있다고 쓰든, 또 자신을 바보라고 쓰든, 멍청이라고 쓰든, 독자들에게 감동을 느끼게 하는 글은 향기가 난다. 거울을 통하여 자신을 조명하듯, 글을 통하여 자신을 생각하게 하는 이성, 슬퍼서 눈물을 쏟게 하는 글, 기뻐서 너털웃음을 터트리게 하는 글, 분노가 치밀어 가슴을 들썩대게 하는 글들은 모두가 감동하는 글이고, 향기나는 글이다. 장미꽃 향기가 다르고, 라일락 향기가 다르듯, 글마다 향기도 다르다. 4월에 피는 꽃향기, 5월에 피는 꽃향기, 여름에 피는 꽃향기, 가을에 피는 꽃향기가 다르듯, 시가 주는 감동, 수필이 주는 감동, 소설이 주는 감동도 다르다. 시는 시로서의 향기가 나야하고, 수필은 수필로서의 향기가 나야하며, 소설은 소설로서의 향기가 나야 제 모습의 제향기다. 수필에서 소설의 향기가 날 수 없듯, 소설에서 시의 향기를 낼 수도 없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게 글의 향기다. 소심하여 남에게 말하지 못하는 사연, 또는 부끄러워 드러내지 못하는 감정을 글로서 드러내 독자들에게 “아하! 그렇구나.”라는 반향을 일으키게 하는 글이 바로 향기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文香萬里’ 라고 쓴 글씨 한 폭을 받았다. 책상 앞에 붙여놓고 글 쓰는 시간마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향기가 만리 가는 글 한편 쓰기를 염원해 본다. 울게 하고, 웃게 하고, 아니면 가슴을 치게 하는 글 한편을 향해 오매불망 그곳으로 달리건만, 지금까지 향기 피워내는 글 한줄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으니, 차라리 아픔이 묻어나고, 부끄러움이 묻어나는 글이라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