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벗이라고 하는 사이에 의리나 정분을 내세워 친구이기를 강조하면서도 벗의 충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벗을 악(惡)의 길로 빠지게 하면서 오래된 벗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공(子貢)이 벗에 대한 도리를 공자(孔子)에게 물었을 때, 공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서로 충고하여서 선(善)의 길로 인도하여야 한다. 그러나 듣지 않는다면 그만 두고서 자신(自身)을 욕됨이 없도록 해라.』 공자의 말대로 벗을 나쁘게 만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벗이 나쁜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충고할 용기가 없는 것은 진정한 벗이 아닐 것이다.그러나 벗의 의리나 정분은 서로에게 선(善)의 길로 인도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변절된 우정에 연연하다 보면 자신도 스스로 몰락하게 된다. 선(善)의 길로 인도하는 충고를 듣지 않는 벗이라면 홀연히 떠나야 한다. 충고를 듣지 않거나, 충고를 해주지 않는 벗은 이미 벗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 말에 삼비(三費)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세 가지 낭비라는 뜻이다. 젊어서 배운 것을 장성하여 잊어버리는 것이 일비(一費)이며,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공로가 있는 아랫사람을 경솔하게 대하는 것이 이비(二費)이고, 오래 사귄 벗과 중도에 절교(絶交)하는 것이 삼비(三費)라 하였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부류의 사람들끼리 끼리 모여 저희들끼리 벗을 하는 것은 의(義)와 정(情)이 아니라 명리(名利)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벗을 사귈 때 반드시 『사귐을 논(論)한다.』고 했다. 사귐을 논한다는 것은 눈앞에 즐거움만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서로 저버리지 않는 의리를 이야기했다. 『부자가 가난할 때를 위해서, 귀한 사람이 천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벗을 사귀는 것』처럼 명리를 위해서 벗을 사귀는 경우라면 이 어찌 친구 사이의 의리를 논할 수 있는 것인가? 정직하고 성실하고 견문이 넓은 사람을 친구로 삼을 것이며, 또한 잃지 말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한번쯤 겪어 봤을, 벗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다. 친구의 정분을 내세워 돈을 빌려 달라고 하든가 보증을 서달라고 할 때, 친구로서의 정분과 의리 때문에 여간 곤혼스럽지 않을 것이다. 현대는 신용사회로의 정착을 위해 신용이 없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도 뻔뻔스럽게 건재해 있는 경우도 있고, 사업의 실패로 어쩔 수 없이 주위에 손해를 끼친 사람들도 있다. 돈을 빌려달라. 보증을 서달라는 부탁을 어떻게 할 것인지?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친구간의 의리와 정분을 내세워 흠이 잡힐 것이고, 들어주자니 너무 힘에 겨웁고 해서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도 상대방이 아무리 급박하게 부탁을 하여 와도 자신의 능력범위 내에서라는 분명한 한계선을 그어 놓고 이를 확고히 지켜야 한다. 순간의 결정으로 행복한 가정이 파탄이 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를 하여야 한다.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혼자의 결정으로 좌지우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내가 벌어서 만든 재산이라고 항변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나 이것은 누구의 재산이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가족은 누구나 공평하고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고, 부모는 마땅히 부양의 의무를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의 한 사람의 잘못으로 전체가 피해를 입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 주는 경우에는 자신의 ‘능력범위 내에서 가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반대로 조금만 도와주면 벗이 재기할 수 있다는 여러 가지 정황을 알고 벗의 성실성을 믿는다면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급박하여도 불확실한 결과에 가정의 운명을 던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친구 중에는 이로운 친구와 해로운 친구가 셋이 있다. 해로운 친구는 겉치레만 능하고 정직하지 못하며, 아첨하기를 좋아하며 성실하지 못하고, 말은 잘하나 견문이 없는 사람이다. 이로운 친구는 정직하고, 성실하고, 견문이 넓은 사람이다. 사람이 이로운 친구를 골라 억지로 사귈 수 없다. 자신이 스스로 정직하고 성실하며, 견문을 넓히면 자연히 그러한 사람들과 벗을 하게 된다. 스스로 남에게 이로운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한다면 멀리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와 벗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며, 세 가지 해로운 친구는 저절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오래된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하여 친구를 사귈 때는 나이 많음을 내세우지 말 것이며, 존귀함을 나타내지 말 것이며, 부유함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벗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덕성(德性)과 벗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간절하게 몇 번 충고하여도 듣지 않으면 떠나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도(正道)가 아닌 곳에서 의리는 지켜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