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커다란 선물이 아니라 『작은 관심』입니다. 커다란 선물에 대한 감동은 쉽게 잊혀지지만, 작은 관심과 배려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습니다. 생일날이나 기념일을 기억해주고, 수고로움을 잊지 않고 배려하는 작은 관심들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찮게 여기는 『작은 관심과 배려가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작은 봉사 큰 보람이라는 뜻은 작은 정성이지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 전해 줌으로써 봉사에 참여한 사람의 보람이 크다는 것입니다. 작은 봉사, 작은 관심과 배려가 크나 큰 사랑으로 전해지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되어 더욱 보람스러울 수 있습니다. 주위에는 자신과는 아무 상관관계도 없는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의 보람은 남다를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소외된 이웃에게 보내는 작은 관심과 배려는 참사랑으로 메아리쳐 가고 있습니다. 『관심과 배려는 사랑을 키우고 신의(信義)를 돈독하게 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촉진제』가 됩니다. 그러나 무관심은 사랑을 파괴하고 생명까지도 잃게 하는 죄악과도 같은 것입니다. 남에게 해를 입히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이 죄악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모든 것을 잃게 하고, 부모도, 가족도, 이웃도 모두 떠나고 말 것이며 스스로를 고립화시킬 것입니다. 세계화 개방화에 밀려드는 합리주의의 서구문명을 정제할 여유도 없이 받아들이면서 생겨난 이기주의는 무관심의 표본입니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적인 발상은 내 일이 아니면 무관심하고, 배려하는 여유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이 없는 무미건조한 생활 속에서 보람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요즘 학교에서 ‘왕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있는 집단 따돌림도 결국 무관심이 원인인 것입니다. 소위 ‘왕따’를 가하는 학생은 소외되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키려고 하는 행위이고, ‘왕따’를 당한 학생은 주위에 대한 무관심과 이기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이 주요 원인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염병처럼 ‘왕따’가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교사와 부모, 그리고 학생 모두의 무관심이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졌어도, 조그만 배려라도 해 주었다면 결코 집단 따돌림이란 없었을 것입니다. 『내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무관심 한다는 것은 내 자식도 다른 사람의 무관심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그 비행청소년이 바로 우리의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범죄와 사건 사고들은 무관심에서 비롯되어 집니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무관심이 범죄를 낳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나와 가정 그리고 사회, 국가가 건재할 수 있습니다. 이기주위와 배금주의가 만연한 상태에서 부의 창출만을 위한 고도경제성장만을 추구한다면, 정신세계의 피폐로 인해 올 사회붕괴현상은 무엇으로든 치유할 수 없는 공동화현상은 자명한 일입니다. 자라나는 우리의 청소년을 위해 관심과 배려 그리고 사랑이 충만할 때 우리의 청소년이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며, 함께 하는 공동체의식에서 ‘나누어 행복한 세상, 베풀어 보람된 사회’의 기반을 조성해 나갑시다. 청소년에 대한 진정한 투자는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관심과 배려를 보내는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작은 관심과 배려로 커다란 참사랑을 만들어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