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李陸史, 1904 ~ 1944)는 한국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본명은 이활(李活)이며 개명하기 전의 이름은 이원록 · 이원삼. 육사(陸史)는 그의 아호로 대구형무소 수감생활 중 수감번호인 264를 후일 아호로 사용함. 1925년 10대 후반에 가족이 대구로 이사한 뒤 형제들과 함께 의열단에 가입하였고, 1927년 10월 18일 일어난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큰형인 원기, 맏동생 원일과 함께 투옥. 문단 등단 시기는 《조선일보》에 〈말〉을 발표한 1930년이며,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중국과 대구, 경성부를 오가면서 항일 운동을 하고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작품도 발표. 그동안 대구 격문 사건 등으로 수차례 체포, 구금. 베이징 공립 중국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해 학업. 중화민국 국민당 군사위원회에서 난징에 창설해 김원봉이 조선인 항일 군관 훈련반 대장에 있던 군사학교에 1932년 9월 입학하여 보병 육성과 특수 부대원 훈련을 받고 이듬해 4월에 졸업. 졸업 후 상하이를 경유하여 국내로 귀국하였는데 1933년 6월 루쉰을 상하이에서 한 차례 만났다고 하는 사실이 밝혀짐. 이육사는 루쉰 사후 오사 신문학가 루쉰을 애도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며 루쉰의 1921년작 단편소설 《고향》을 한국에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했음.